2026. 8. 20. 21:19ㆍ사찰기행
10년 전 경주 여행길에 우연히 거쳐 갔던 절집 은해사를 다시 찾게 된 건 은해사 근처에 뚝 떨어져 자리 잡은 은해사의 말사 거조암 때문이다. 정말 뜻하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거조암 영산전은 국보급 목조건축물 중 하나이다. 얼핏 보기에 영 볼품없어 보이는 황토 빛깔 절집 건물 하나가 한국에 20채도 남아 있지 않은 국보급 목조건축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에 오면 들러야 할 가치가 있다.

이번에도 대구를 거쳐 하양까지 버스로 이동하고 하양 시내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은해사로 향하며 기사님께 부탁하고 요금을 흥정하여 은해사 가는 길목에 거조암을 찾게 되었다. 현재는 은해사의 말사로 자리한 거조암에는 영산전이라는 목조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다. 거조암은 산내 암자로서 신라 효성왕 2년, 서기 738년 원참 대사가 창건하였고, 그 뒤 고려 우왕 13년 혜림 법사와 법화 화상이 영산전을 건립하여 오백 나한을 모신 유서 깊은 나한 기도도량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1970년 해체 수리를 하면서 발견된 묵서명에 의해 1374년 고려 공민왕 23년에 건립된 건물임이 확인되어 국가지정문화재 국보 제14호로 지정된 고려시대 목조건축물이다. 공민왕 23년이라면 강릉 객사문과 봉정사 극락전만큼 오래된 건물이라는 뜻이다. 650년 전 목조건축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뜻인데, 이게 가능한지도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불당 하나를 지으면서도 1,000년 그 이상 가도록 건물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최첨단 공학으로 100층씩 건물을 짓는 오늘날도 건물의 수명이 65년을 넘기 어려운 판에 700년 전에 지은 건물이 현재까지 멀쩡하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

영산전 기둥에는 배흘림이 있고 기둥 위에는 주심포식 공포를 배치하였는데, 헛첨차가 보이고 쇠서의 곡선이 이 건물 이전의 건물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전면 주칸은 중앙 칸에만 출입문이 있고 중앙 칸 바로 옆의 협칸은 흙벽으로 막고 그다음의 두 칸에는 살창을 끼웠다. 얼핏 보기에 건물 전체가 경판고처럼 단순한 분위기다. 건물 내부에는 오백나한상이 안치되어 있다. 간결하고 단순한 건물이지만 구조와 의장 면에서 고려 말기 목조건축물의 진수를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는 목조건축물이다.

은해사를 찾은 진짜 이유가 거조암 영산전이지만 은해사 역시 여느 절집에 뒤지지 않는 큰 절집 중 하나이다. 은해사 입구부터 늘어서 있는 300년생 소나무 숲을 지나면 작은 계곡과 기암괴석이 펼쳐지고, 이를 등 뒤로 하고 다리를 건너면 팔공산 뒤편 영천 방향에 자리 잡은 은해사가 나타난다. 현재도 조계종 제10교구의 본사로, 조선 31본산·경북 5대 본산으로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은해사는 신라 41대 헌덕왕 원년 809년 혜철 국사가 인근에 해안사라는 사찰을 창건하였다가 1545년 화재로 전소되어 1546년 명종 원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해 왔고, 고려 인종의 태실을 봉안하면서 은해사로 이름을 고쳤다. 은해사는 임진왜란 때도 큰 화를 입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나, 조선 헌종 13년 1847년 창건 이래 가장 큰 화재가 발생하여 전소되었다가 헌종 15년 1849년 중창불사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 추사 김정희가 경상감사 시절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추사의 글씨 5점이 지금까지 귀중한 문화재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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